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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의 외침, 빼앗긴 청춘: 6·25 소년병 생존자 국가 상대 첫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역사적 의미
6·25 전쟁 당시 정규군으로 징집되었던 소년병 생존자 2명(장성곤·박태승 씨, 각 93세)과 고인 2명의 유족이 2026년 6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 측은 만 15~17세의 미성년자로 병역 의무가 없음에도 법적 근거 없이 전선에 투입되어 청춘을 빼앗겼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소송은 2024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소년병 인권 침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이후 최초로 제기된 소송이며, 원고 측은 금전적 보상보다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명예 회복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1. 잊혀진 3만 명의 소년 영웅들, 76년 만에 법정에 서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1950년 발발한 6·25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비극적인 역사가 존재한다. 바로 책가방을 멘 채 총칼을 쥐어야 했던 '소년병'들의 희생이다. 이 잊혀진 소년 영웅들이 구순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가를 상대로 법정 투쟁에 나섰다.
2026년 6월 23일, 6·25 전쟁 참전 소년병 생존자인 장성곤(93), 박태승(93) 씨와 고(故) 장병율, 하명윤 씨의 유족은 대구지방법원에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은 명확하고도 뼈아프다. 참전 당시 만 15세에서 17세에 불과했던 미성년자로서 어떠한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 집행에 의해 정규군으로 전선에 강제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꽃다운 청춘을 전장의 참호 속에서 잃어버리고 평생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온 이들의 소송 제기는 단순한 금전적 요구를 넘어 국가의 책임 있는 역사적 응답을 요구하는 준엄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2.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국가배상 소송의 법적 근거 마련
이번 소송이 제기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법적, 역사적 배경에는 불과 2년 전 이루어진 국가 기관의 뜻깊은 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소년병 문제는 오랜 세월 국가 안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외면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 2024년 7월 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마침내 한국전쟁 중 소년병 동원에 대한 인권 침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소년병들이 병역 의무가 없음에도 전쟁에 동원되어 생명권 침해, 육체적 및 정신적 피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기의 학습권을 박탈당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피해를 입었음을 명확히 확인하였다. 소송대리인인 하경환 변호사는 이 진실화해위의 결정으로 인해 국가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새롭게 기산되어 법적인 소송 제기가 가능해졌음을 밝혔다. 즉, 국가가 스스로 과거의 과오를 조사하고 침해 사실을 인정한 직후 이루어진 실질적인 첫 사법적 구제 절차가 막을 올린 것이다.
3. 자원입대의 가면을 쓴 강제 징집: 소년병 동원의 참혹한 실체
우리는 흔히 소년병을 떠올릴 때 학도의용군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펜 대신 총을 든 숭고한 소년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자원입대한 소년들이 존재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는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진 동원의 실체가 결코 자발성에만 의존하지 않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당시 18세 미만 미성년자로 법적 징집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군으로 동원된 소년병의 규모는 무려 약 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문서상으로는 '자원입대'의 형식을 띠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실상의 강제 동원인 '유인 징집'에 가까운 형태로 끌려갔다는 점이다. 마을에 들이닥친 군경에 의해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혹은 애국심을 교묘히 자극하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린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장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소년의 앳된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포탄의 공포와 굶주림, 전우의 죽음은 평생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으며, 국가는 수십 년간 이들의 상처를 제도적으로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4. 미완의 숙제: 위법성 판단의 유보와 특별법 제정의 시급성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은 분명 고무적인 성과이나, 여전히 법적 투쟁의 과정에는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이 존재한다. 바로 당시 국가의 징집 행위 자체가 가지는 명백한 '위법성'에 대한 인정 여부이다.
진실화해위는 소년병들의 막대한 피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한국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절대절명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소년병 병역 수행 자체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유보적인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이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방어하는 논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도덕적, 인권적 차원에서 미성년자를 전장에 몰아넣은 행위는 현대의 국제법적 기준으로는 명백한 아동 인권 유린이다. 진실화해위조차 "국가가 소년병의 명예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구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회와 정부가 입법적 해결책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 구순의 노병들은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법부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진심 어린 사과": 소년병들의 마지막 염원
국가를 상대로 1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청구되었지만, 원고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배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 죽음을 목전에 둔 93세의 노병들에게 돈표의 액수는 더 이상 남은 여생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척도가 될 수 없다.
하경환 변호사는 "소년병 어르신들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건 금전 보상이 아닌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라고 단언했다. 국가의 부름, 혹은 국가의 강압에 의해 총을 들었던 이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합당한 대우는커녕 역사의 그늘 속에 숨죽여 지내야 했다. 청춘을 반납하고 국가의 존립을 지탱해 낸 자신들의 헌신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올바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최후의 절규인 셈이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을 단순히 시효가 지난 금전적 채무 관계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과거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소년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정표로서 무겁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살아계신 소년병들의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